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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21학번 윤준서 학우_국궁의 매력

등록일 2025-06-24 작성자 철학과 조회 14

상록원 뒤로 남산과 이어져있는 계단을 올라가 국립극장 방면으로 약 5분정도 걸으면 ‘석호정’이라는 활터가 있다. 석호정에서는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활을 쏘는 모습을 볼 수 있 다. 남산을 배경으로 활터의 정경이 매우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석호정의 매력 중 하나이다.

 

활쏘기는 재미있다. 활쏘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앞서 말한 ‘풍경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쏴서 맞추는 재미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활쏘기는 굉장히 직관적인 스포츠이다. 나의 자세가 과녁을 적중시킬 수 있는 자세라면, 화살은 과녁으로 날아가 과녁에 적중한다. 나의 자세를 제외한 변수는 단 두 가지 뿐이다. 바람과 장비이다. 장비는 사장님께서 잘 만들어 주실 것이라 믿는다면 유일하게 남는 변수는 바람 뿐이다. 이것이 활쏘기를 매력적이게 만들어 주는 또 다른 요인이다. 변수가 하나도 없었더라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변수가 너무 많으면 나의 노력과 성과를 연결시키기 어려워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람이라는 변수는 적절하다.

 

양궁과 국궁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활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시위 부분과 활체(구부러지는 부분, 장력을 버티는 부분)가 있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국궁과 양궁이 공유하는 이런 간단한 구조는 바로 ‘궁사의 역설’이라는 문제를 맞닥뜨리는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화살이 거치되는 위치 때문이다. 이것은 화살이 활체를 뚫고 지나갈 수 없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아까 구조를 다시 떠올려 보자. 이제 화살을 시위에 매기고, 당겨보면 한가지 의문이 생길 것 이다. 화살은 어디로 나가는 것인가? 화살을 똑바로 보내고 싶다면, 시위를 일직선으로 당기고 일직선으로 쏴야 한다. 하지만 그곳은 장력을 버티는 활체가 가로막고 있다. 활체를 약간 비껴나가게 화살을 거치하고 쏘면 이 약간의 틀어짐 때문에 화살이 일직선으로 나가지 않고, 활체에 거치된 방향으로 더 나간다. 이것이 궁사의 역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양궁은 가운데에 홈을 만들었다. 활체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그곳에 화살을 거치하는 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하지만 국궁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흘려잡기’라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이것이 국궁의 또 다른 매력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는 자세를 일정하게 기계처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궁은 양궁에 비해서 자유도가 높다. 스코프도 없고 홈도 없다. 활체를 얼마나 꽉 잡느냐, 어디를 잡느냐 얼마나 화살을 당기느냐, 이런 것들을 조절하여 화살의 진행방향을 얼마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나의 육체에서 유발되는 여러 변수들을 내가 통제하여 과녁을 맞출 수 있는 자세로 만든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또 다른 매력은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활쏘기도 대회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 으로는 혼자하는 스포츠이다. 한량들이 아내에게 둘러대느라 만든 말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긴 하지만, 예로부터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이라고 언급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승부욕이 강해 경쟁 스포츠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활쏘기를 취미로 삼고 나서는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욕심이 생겨 시수(과녁에 맞은 화살의 수효)를 신경쓰고 있긴 하지만, 쏘기 시작했을 때는 활쏘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러 온 덤으로 활쏘기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활쏘기는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으레 활터는 그 부지와 위험성 때문에 도심과 떨어져 가는 데 1시간 정도 걸리는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석호정은 우리 학교에서 가깝다. 우리 학교는 활세권인 것이다. 타 대학교 학생들보다 활을 쏘기 쉽다. 이색적인 취미를 찾는다면 활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