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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의 창설과 불교철학적 요소의 망라

1953 ~ 1969

  • 1953
    • 02.06. 동국대학이 동국대학교로 승격하며 불교대학에 철학과 신설
  • 1955
    • 04.01. 대학원 철학과에 박사학위과정 설치
  • 1957
    • 02.25. 제1회 학부 학위수여식 (김광수 외 13명)
  • 1958
    •   불교학과와 공동으로 《동국사상》 창간
  • 1960
    • 03.05. 철학과 최초 석사학위수여 (박성배, 신우철, 임상은)

 

 본교에 철학과가 설치된 것은 1953년 2월이었다. 이때의 철학과는 불교대학 내에 소속된 학과였다. 그러니까 불교학을 지지해주는 동양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이때의 교과목을 보면 거의 30퍼센트가 불교학의 교과목이었다. 물론 하나의 학과로 설치되기 이전에도 철학에 관한 강좌는 개설되고 있었다. 그것은 철학 학과목이 문학·사학과 더불어 인문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1940년 6월에 문을 연 혜화전문학교의 불교과에는 철학개론, 윤리, 동양윤리학사, 서양윤리학사, 인도철학, 윤리학 등의 강좌가 개설되었고, 만주의 침략을 목적으로 설치된 흥아과에는 동양윤리학이 개설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철학과가 설치되기 이전부터 동양철학은 물론 서양철학과 윤리학, 그리고 논리학 등이 광범위하게 강좌로 개설되어 철학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의 강좌 담당자는 김용배, 김두헌, 박종홍 등이었다. 그 중 김용배는 혜화전문학교의 전임강사였고, 김두헌과 박종홍은 강사로서 여러 강좌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김두헌은 수신, 논리학, 심리학, 윤리학 과목까지 담당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용배 교수는 1941년 혜화전문학교의 제2대 교장으로 와타나베 신지(渡邊信治)가 취임한 직후에 이루어진 교·강사 인사 때 전임강사로 초빙되어 한문과 동양윤리학을 담당하였다. 해방 후에도 계속 학교에 남아 혼란한 교내 외의 풍상을 두루 겪으면서 철학과 탄생의 산파역을 담당하여 동서양 비교철학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재임 중 중국철학사 및 철학개론을 바탕으로 유물론을 배격하고 새로운 철학의 문호를 개척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역저인 《동양철학사상사 대관》에 부록으로 소개된 〈東西⽂化⽐較論政治⼒史觀提唱〉은 그의 철학체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논문이다. 1958년에는 도서관장을 맡기도 하였다.

 

 독립된 철학과의 강좌 내용을 보면 전 학년에 걸쳐 천태학, 인도불교사, 대승불교사상, 불교철학, 화엄학, 한국불교사, 불교학특강, 인도철학사, 기신론, 불교논리학, 인도철학 등 불교관계 강좌와 서양중세철학, 현대철학, 변증법, 플라톤, 신칸트학파, 인식론, 서양철학사, 형이상학, 서양철학특강, 러셀연습 등 서양철학 강좌, 그리고 동양철학사, 동양철학특강, 동양철학연습, 본방철학특강, 본방철학사의 동양철학 관계 강좌가 설치되었다. 여기에서 본방(本邦)철학이란 곧 한국철학을 일컫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강좌를 볼 때 지적되는 것이 다른 대학과 달리 본교 철학과 강좌에는 유난히 불교관계 강좌가 많은 반면, 동양철학과 한국철학 강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 하나는 불교대학에 속한 철학과인 만큼 불교철학을 보충하는 것이 철학과의 역할이라고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철학과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초창기 철학과의 탄생은 불교학 중심 철학강좌 개설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학과 설치 당시 주임교수이던 김용배 교수가 1958년에 창간한 《동국사상》 제1집에 기고한 논문 〈현대철학이 불교철학에서 배워야할 점〉의 내용이 그러하고, 《동국사상》 제1집의 간행 주체가 본교 불교학회와 철학회였던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제3집 역시 불교학회, 철학회 그리고 인도철학회가 발간하였으며, 제4집은 앞의 3개 학회에 동국사상연구회가 추가되었고, 신동욱의 〈Schelling에 있어서 자유의 문제〉 한 편을 제외하고는 집필자가 장원규, 김잉석, 오형근, 권기종, 고익진 등 대부분 불교학계 인사였다. 이를 고려할 때 초기 철학과는 불교철학의 외연을 넓히는 역할에 무게중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철학과는 인문대학 철학과 본연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즉 1958년의 교과과정을 보면, 종래의 11개 과목에 달하던 불교학 관련 교과목에서 5개 과목이 줄어 불교교리발달사, 화엄학, 천태학, 인도불교사상사, 선학개론, 대승불교사상사, 송명유자불교관 등 7개 과목만이 남은 반면, 노장철학연습, 역사철학, 비교철학 등 동서양의 철학교과목이 신설되었다.

 

 교과과정이 철학과 본연의 모습을 띠면서 교수진도 괄목할 정도로 보강되었다. 서양철학에 정종 교수, 본방철학과 역사철학에 한상련 교수, 중국철학 및 노장철학에 김병규 교수, 비교철학에 오종식 교수, 서양중세철학에 김규영 교수, 서양고대철학에 윤명로 교수가 각각 초빙되어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종 교수는 1915년 9월생으로 배재고보를 나와 중앙불전을 마치고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에서 1941년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영광중학교 교감, 광주의과대학 예과 부교수, 전남대 교수를 거쳐 1958년 본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1981년 2월 정년이 되어 물러날 때까지 실존철학과 프래그머티즘 강의를 담당하였다. 1959년에 발표한 〈한국 철학자의 철학연구 동기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그 외에 《새 교육원리》(1959), 《전환기의 철학》(1973), 《고뇌의 철학》(1973), 《공자사상의 인간학적 연구》(1975), 《산, 그대 나의 고향》(1977), 《공자의 교육사상》(1980), 《더불어 고뇌하는 우리의 마당》(1985), 《논어와 공자》(1985), 《동서사상의 만남》(공저, 1982), 《라이프니쯔와 단자(單⼦) 형이상학》(공저, 1984), 《자기의 세계를 산다》(공저, 1984), 《한국 수상록 (II)》(공저, 1990), 《산의 빵세》(공저, 1993) 등 많은 저서를 발간하였다.

 

 한상련 교수는 1918년 1월생으로 1940년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를 나와 문학사를 획득한 후 풍문여중 교사, 서울농업초급대학 교수를 거쳐 1958년 본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1983년 2월 정년 퇴임하기까지 철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한국철학특강, 역사철학 강좌를 담당하였다.

 

 오종식 교수는 철학 교수이기보다는 언론인으로서 더 잘 알려져있다. 1906년생으로 1924년 일본 도요대학 문화전문부를 나와 1947년 〈민중일보〉, 〈경향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고 1948년 8월부터 1949년 1월까지 초대 사회부 차관을 지냈으며, 1948년 3월에 본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재직 중에도 〈서울신문〉 전무이사 겸 주필(1949~1953), 〈경향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1953~1954), 〈한국일보〉 주필 및 부사장 겸임(1954~1960), 〈서울신문〉 사장(1960~1962) 등을 겸임하였고, 1962년 본교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언론에만 몸을 담아 〈국제신보〉 사장, 세대사 사장, 한국신문연구소장, 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 대한공론사 이사장, IPI 준회원,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였다. 저서로는 《원숭이와 문화》, 《연북만필(硯北漫筆)》, 《중용기》. 《혁명의 원근》 등이 있다. 오종식 교수는 동서양의 비교철학을 담당하여 문명비판적 차원에서 동양과 우리의 것, 서양과 동양의 차이점 등에 관해 강의하였다.

 

 윤명로 교수는 1922년 5월생으로 경기중학을 마친 후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거쳐 1948년 8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과정을 이수한 후 경기고교 교사, 서울대 문리대 강사·대우조교수·대우부교수를 거쳐 본교 철학과 부교수로 부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서양철학사》, 《현대의 정신적 위기》, 《현대문명비판》, 《현상학과 현대철학》, 《문화과학과 자연과학》(역서), 《무소사(無所思)》 등이 있으며, 1972년 서울대학으로 전근할 때까지 서양고대철학과 희랍어,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한 강좌를 담당하며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김병규 교수는 해박한 한문 지식과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전통유학과 불교의 관계를 강의하였는데, 논어, 맹자, 노장의 원서강독을 통해 동양의 전통사상에 관한 학생들의 이해를 제고시켰다.

 

 김규영 교수는 1919년 9월 평북 영변 출생으로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나와 벨기에 루뱅카톨릭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조양보육사범학교 교사를 거쳐 1954년 본교에 부임하였다. 서양 중세 철학과 독일의 관념론에 대해 강의하였는데, 저서로는 《시간과 영원》, 《중세철학사》, 《철학사상의 한국적 조명》, 《하이데거의 철학사상》,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사상》, 《증보판 시간론》, 《현대사회와 평화》 등이 있다.

 

 이 무렵 학생들의 활동도 매우 주목된다. 1958년에 간행된 《동국사상》 제1집에는 철학과 김용배 교수의 〈현대철학이 불교철학에서 배워야 할 점〉과 박지연의 〈Husserl의 철학방법〉이 소개되었는데, 편집에 불교과 선진규 등과 더불어 철학과 학생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1957년에 첫 졸업생 15명을 배출하였으며, 졸업생 중에서 임상은 등 2인은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뿐만 아니라 1955년에 대학원에 박사과정이 생기면서 학구열은 점점 높아져갔다.

 

 이상에서와 같이 1950년대에 철학과가 창설되었으나 그 특성상 불교학이 첨가된 교과과정이 채택되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다른 대학의 철학과와 달리 불교철학과 함께 한국철학, 동양철학, 서양철학이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진 교과과정 아래 수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엽에 이르러 불교학 강좌가 일부 줄어든 대신에 동서양철학과 한국철학 강좌가 일정 부분 확대되어 타 대학의 강좌와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 비록 불교학 강좌가 축소되었지만 오늘날처럼 완전히 배제된 것이 아니었다.

 

 철학과는 1960년대에 이르러 크나큰 진통을 겪게 된다. 이는 학과 설치의 산파역을 담당하고 학과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김용배 교수의 갑작스런 퇴진과 타계, 그리고 서양철학 전공 교수의 이직과 이에 따른 정원 축소로 인한 것이었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1961년 7월 2일 정부는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에 따라 본교에서도 60세 이상의 노교수들이 교단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김용배 교수도 이 특례법의 적용을 받아 퇴진하였고, 곧이어 노환이 겹쳐 1964년에 타계하고 말았다. 김 교수의 퇴진과 타계로 철학과는 큰 손실을 입었으며, 그 직후 철학과 강좌가 180학점에서 160학점으로 축소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게다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양철학 강좌를 담당하던 윤명로, 김규영 두 교수가 동시에 타 대학으로 전근하였다. 윤명로 교수는 모교인 서울대학으로, 김규영 교수는 서강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교수의 전근 이후 한동안 공석을 충원하지 않아 철학과는 김병규, 정종, 한상련 등 세 교수만으로 학과를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과 강좌를 살펴보면 교수진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준다. 서양철학 분야에는 서양철학사(I), 서양철학사(II), 인식론, 기호논리학, 서양철학연습, 영서강독(I), 영서강독(II), 형이상학, 영국경험론, 독일관념론, 과학철학, 실존철학, 현대철학, 철학연습,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16개 과목이 개설되었다. 반면 중국철학과 한국철학은 과목 자체가 제한적으로 개설되었다. 이를테면 동양철학 부문에서는 중국철학사(I), 중국철학사(II)와 성리학이, 한국철학 부문에서는 한국철학사, 한국철학특강만이 개설되었다. 그리고 불교학에서는 중국불교사, 천태학, 화엄학, 유식학만이 개설되었으며, 그 밖에 인도철학사와 인도논리학 강좌가 새로 개설되었다.

 

 철학과가 인문학의 본령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본격적인 학술활동에 들어간 것은 1970년부터이다. 그 이전의 철학과는 말하자면 불교학 연구를 위한 사전 준비 내지는 보완적인 의미로서의 철학과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철학과의 성장과 발전

1970 ~ 1989

  • 1970
    • 11.05. 철학과 학술지 《철학사상》 창간
  • 1971
    •   철학과 최초 박사 학위수여 (윤명로 교수)
  • 1973
    • 10.29. 제1회 철학과 학술제 '디오니소스제' 개최
  • 1979
    • 09.22. 문리과대학 철학과로 소속 변경
  • 1982
    • 03. 문과대학 철학과로 편제 변경
  • 1983
    • 04.16~17. 제1회 철학과 연합MT (남이섬)
  • 1984
    • 03.05. 철학과 학회지 《울림》 창간
  • 1985
    • 01.25. 철학과 학회지 《울림》을 《우리시대》로 재창간

 

 철학과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 면모를 일신하게 된다. 우선 그동안 결원으로 있던 교수 진용에 충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1970년 3월에 본교 철학과 출신의 김용정 교수가 부임하면서 만성적인 교수진 부족사태를 면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본교 철학과 출신이 교수로 부임해 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김용정 교수는 1930년생으로 1959년 본교 철학과를 마친 후 다시 본교 문리과대학(현 이과대학) 물리학과에 학사 편입하였다. 1961년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여 〈Kant의 공간시간론〉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본교에 교수로 부임하였다. 전공의 다양성을 지닌 만큼 그의 학문적 역정은 이채로우면서도 심도 있고 다양했다. 우선 칸트 관련 논고만 하더라도 〈공간시간론〉, 〈선험적 감성론 개관〉, 〈공간직관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공간〉, 〈Kant의 외경의 윤리와 정언명법〉, 〈Kant에 있어서 자연과 자유에 관한 연구〉, 〈가족윤리〉, 〈형이상학의 기초〉, 〈비트켄슈타인에서 본 칸트의 ‘선험적 주관’의 문제〉, 〈영구평화론〉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라이프니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듀이에 관한 논고, 상대성이론의 ‘장(場)’론과 불교의 ‘공(空)’관〉, 〈과학철학과 한국사상〉, 〈Hadron(강립자强粒⼦)의 상호작용과 화엄사상〉, 〈The Dissolution of a Material Substance and the Description by Space of Field〉, 〈기호논리학 상에서 본 중론(中論)의 이중함언 논리(⼆重含⾔論理)〉, 〈유전공학의 도전과 반응〉, 〈과학과 예술의 추상〉, 〈양자장 이론과 불교의 중도의 논리〉, 〈오늘의 의학과 철학의 과제〉, 〈불교와 현대물리학〉, 〈초현이론(超弦理論)과 〈역(易)〉의 대칭이론〉, 〈물질과 정신의 양의성(兩依性)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 등 과학철학적 영역의 논고들이 있다. 여기에다 불교 관련 논문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논문 외에 《칸트 철학 연구 - 자연과 자유의 통일》(1978), 《과학과 불교》(1979), 《제3의 철학》(1986) 등의 저서를 발간했다. 또 번역에도 심혈을 기울여 《선(禪)과 정신분석》(E. 프롬 외 저), 《칸트철학 이해의 길》(W. O. 되에링 저),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F. 카프라 저), 《칸트 대 비트겐슈타인》(S. 프롬 저) 등과 같은 역서를 간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김 교수의 활동 가운데 으뜸가는 일은 불교대학에 소속되어 있던 철학과를 문리과대학 소속으로 변경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는 철학과가 불교학의 보조학문에서 벗어나 인문학 본연의 길을 찾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는 본교 철학과에서 양성한 학자들을 교수로 초빙하여 본교 철학과의 위상을 높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열매를 맺어 1970년대 말인 1979년 9월부터 철학과가 문리과대학으로 소속을 변경했다. 또 본교 철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후 노장사상을 연구하고 귀국한 김항배 교수와 윤리학 및 동양철학을 전공한 송석구 교수가 1970년대 중반에 부임하면서 철학과는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1970년대 철학과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일의 하나로 학술지 《철학사상》의 간행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 한상련 교수가 학과 주임으로 있으면서 학술지 간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터에 김병규 교수의 회갑을 맞아 그의 회갑논총을 겸해 《철학사상》의 간행을 시도한 것이다. 창간호에는 정종의 〈철학의 대중성〉, 한상련의 〈서양철학과 한국철학과의 비교연구〉, 윤명로의 〈학(學)으로서의 철학과 Aperetik의 의의〉, 김용정의 〈Kant의 가족윤리〉 등과 같은 논문이 게재되었다.


 《철학사상》이 간행되기 전에는 불교학과 학생회인 불교학회와 합동으로 《동국사상》을 간행하였다. 당시에는 철학과만의 학술지가 없어 부족하나마 《동국사상》을 통해 학술활동을 하였다. 《동국사상》은 1958년에 제1집이 출간되었는데, 철학관계 논문으로는 앞서 언급한 김용배의 〈현대철학이 불교철학에서 배워야 할 점〉, 박지연의 〈Husserl의 철학방법〉 등 두 편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또 1965년에 간행된 제3집에는 한상련의 〈선악천리론(善惡天理論)〉이 게재되었으며, 1968년에 간행된 제4집에는 신동욱의 〈Schelling에 있어서의 자유의 문제〉가 게재되었다. 그리고 1971년에 간행된 제6집에는 김용정의 〈상대성이론의 ‘장’론과 불교의 ‘공’관〉이 소개되었다. 그 외에는 부분의 논문이 불교학 관련 논고였다. 그러한 까닭에 편집 겸 발행을 불교학회와 공동으로 하거나 인도철학회 등이 편집에 참여하였다. 어떤 때는 미술학회와 공동으로 편집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많은 부분이 불교학 관련 논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철학과 단독의 학회지 간행이 교수는 물론, 대학원생, 학부생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러한 소망이 결국 《철학사상》의 발간으로 이어진 것이다. 《철학사상》 간행에 필요한 재정은 동문의 협조를 통해 충당되었으며, 이에 힘입어 1974년에 제5집에 이르기까지 매년 1책씩 간행되었다. 그러나 동문들의 협조가 중단되면서 1975년부터 잠시 중단되었다가 1983년에 이르러서야 제5집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난관을 뚫고 간행을 강행한 이후부터는 제24집에 이르기까지 순조로운 항진을 계속하게 된다.


 1970년대에 또 한 가지 특기할 일은 디오니소스제의 개최를 들수 있다. 이 전통적인 축제는 철학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치러지는 행사인데, 1973년에 처음 열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행사는 일정 기간 학술행사, 문화행사, 체육행사, 친교행사 등을 진행하며, 학과의 한 해 활동을 갈무리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학술제는 해당연도 디오니소스제의 주제에 따라 그 주제에 대한 교내외 교수의 강연이 있고, 자유로운 문제의식에 따라 대학원생, 학부생 또는 학회의 논문발표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학술제에서 발표된 글을 모아 학회지인 《우리시대》를 간행하였다.


 제1회 디오니소스제가 열린 것은 1973년 10월 29일이었다. 이때의 주제는 ‘동서철학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첫 행사에서 누가 어떤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누가 학술발표를 하였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79년에 열린 제2회 행사는 ‘현상학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에 따라 성균관대 이영호 교수가 〈후설의 현상학〉, 본교 김용정 교수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을 강연하였다. 디오니소스제는 1970년대에 두 차례만 열렸지만, 시작의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1980년대에 이르면 이 행사는 거의 해마다 열리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71년에 본교 철학과에서 최초의 박사학위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계속하여 박사가 양산되었다. 최초의 수여자는 본교 윤명로 교수로서 학위논문의 제목은 〈독오학파(獨壞學派)의 객관주의에 관한 연구〉였다. 이후 1970년대 에만 많은 학위 수여자가 탄생하였다. 당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과 논문을 살펴보면 최명관의 〈Descartes의 중심사상과 현대적 정신의 형성〉, 김규영의 〈Husserl의 시간구성에 있어서의 지향성과 시선〉, 정종의 〈공자 사상의 인간학적 연구 - 군자론을 중심으로〉, 김용정의 〈Kant에 있어서의 자연과 자유에 관한 연구〉, 최재근의 〈G. W. F. Hegel의 대상의식에 관한 연구〉, 문형만의 〈G. Kerschensteiner의 교육사상 연구〉, 박선영의 〈불교적 교육관에 관한 연구〉 등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철학과는 과거 불교대학에 소속되어 있을 때와는 전연 다른 면모를 보이면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교과과목이 전공별로 세분화되고, 각 전공에 맞춰 교수진이 충원되면서 철학과의 인문학적인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철학과는 1979년 9월에 불교대학에서 벗어나 문리과대학으로 편제되었다가 1982년에는 학제의 변동으로 문과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철학과 학생회도 활성화되어 1983년 철학과 최초의 수련모임을 남이섬 야외수련장에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학생회는 1984년에 학회지 《울림》을 간행하였다가 이듬해 《우리시대》로 제호를 바꾸어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이때 창간된 《우리시대》는 2018년 제30호를 맞이하였고, 오늘날까지 학생회에서 간행하는 전통있는 학회지로 자리하고 있다.


 1970년대에 시작한 디오니소스제는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거의 매년 열리는 행사로 탈바꿈하였으며, 그 내용도 더욱 내실화하였다. 1980년에 열린 제3회 디오니소스제는 ‘고대철학의 제 문제’를 주제로 성균관대 박종현 교수가 〈희랍사상에 있어서의 디오니소스의 의의〉, 덕성여대 황필호 교수가 〈종교는 기존 가치를 부정하는가?〉를 강연하였다. 두 해를 건너뛰어 1983년에 제4회 디오니소스제가 열렸다. 이때는 ‘현실과 철학’을 주제로 이석윤 교수가 〈Hegel의 변증법과 역사〉, 김항배 교수가 〈노자의 도(道)와 덕(德)〉, 황경식 교수가 현실과 인식을 강연하였다.


 철학과의 변화는 교수진에서도 잘 드러난다. 1985년 당시의 교수진은 김용정 교수를 필두로 이석윤, 송석구, 김항배, 황필호, 황경식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간 철학과에 오랫동안 재직하던 정종, 한상련 두 교수가 1981년과 1983년에 정년을 맞아 퇴임하고 난 이후였다.

 

 김용정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철학 전공으로 철학과에 부임한 이래 이 부문에서 국내 학계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였다. 이석윤 교수는 사회철학 전공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공군사관학교 및 충남대 교수를 거쳐 1983년 본교에 부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헤에겔에 있어서의 무한판단의 문제》(1965), 《역사주의의 빈곤》(1975), 《철학의 제 문제》(공저, 1979), 《판단력비판》(역서, 1980)이 있으며, 충남대 대학원에서 취득한 박사학위논문은 《변증법에 관한 연구》이다.

 

 송석구 교수는 한국철학 전공으로 본교 철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민대학 조교수를 거쳐 1977년 본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율곡의 철학사상》(중앙신서, 1984), 《한국의 유불사상》(사사연, 1985), 《무상(無常)을 넘어서》(사사연, 1985), 《한국의 유교사상》(사사연, 1985), 《율곡의 철학사상 연구》(형설출판사, 1987), 《지혜의 삶 믿음의 삶》(1988) 등이 있다.

 

 김항배 교수 역시 본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획득한 후 인천 교육대학 전임강사를 거쳐 본교에 부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 〈노자의 도와 덕에 관한 연구〉, 〈원효의 일심사상의 본질과 그 논리적 구조〉, 〈노장사상에 있어서 도의 변증논리와 인식논리의 통일〉, 〈장자의 인간관〉, 〈노장 천도관의 의의 및 그 특색>, 〈장자의 지식론〉, 〈불교철학에 있어서 정의의 문제〉, 〈불교와 노장철학에 관한 일고찰 - 특히 유무와 체용을 중심으로〉, 〈노장의 실체론적 삼무설(三無說)과 혜능(慧能)의 즉심(성)즉불적 삼무설〉 등이 있다. 또 저서로는 《노자철학의 연구》(사사연, 1985), 《장자철학 정해》(불광출판부, 1992), 《불교와 도가사상》(동국대출판부, 1999) 등이 있다.

 

 황필호 교수는 종교철학 전공으로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와 오클라호마대학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하였다. 이후 덕성여대 조교수를 거쳐 1981년 본교에 부임하였다. 주요 저서로 《철학적 인간 종교적 인간》(범우사, 1983), 《분석철학과 종교》(종로서적, 1984), 《이데올로기, 해방신학, 의식화교육》(종로서적, 1985), 《철학적 여성학》(종로서적, 1986), 《비폭력이란 무엇인가》(역서, 종로서적, 1986), 《비교철학입문》(철학과현실사, 1989), 《종교철학자가 본 불교(민족사, 1990), 《서양 종교철학 산책》(집문당, 1996), 《문학철학 산책》(집문당, 1996) 등이 있으며, 이외에 많은 산문집을 출간하였다.

 

 황경식 교수는 윤리학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조교수를 거쳐 1980년 본교에 부임하였다.

 

 이 시기 철학과 강좌를 살펴보면 교수진의 충원으로 인해 교과목의 균형이 맞춰진 것이 눈에 띈다. 서양철학의 경우 윤리학, 영미철학, 언어철학, 기호윤리학, 인식론, 종교철학, 형이상학, 서양근대철학사, 현대철학사조, 독일관념론, 가치론, 사회철학, 고대희랍철학, 문학철학, 역사철학, 과학철학, 서양(구주)철학 등 17개의 과목이 개설되었다. 동양철학의 경우 한국철학사상, 중국철학, 동양철학의 제문제, 중국중세철학, 중국근세철학, 한국근세철학, 노장철학, 중국청대철학, 한국철학연습, 중국철학연습 등 총 10개 과목이 개설되었다.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1980년대부터 철학과 교과목에서 불교 교과목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개설된 불교 교과목은 인도철학사1부, 인도철학사2부, 원시불교사상론, 인도논리학, 구사론, 삼론학, 유식론, 불교교리사 등 총 8개 과목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인도철학사 1개 과목만 개설되었으며, 이 또한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폐설된다. 이는 불교학 연구의 수단으로서의 철학과로부터 탈피하여 인문학의 본령으로서의 철학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김용정, 김항배, 송석구 교수가 본교 철학과 대학원 출신으로서 본교 교수로 취임하여 학계의 주요 연구자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본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배출된 많은 학자들이 국내외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면, 본교 최초의 철학과 석사학위자인 박성배는 〈범아일여사상 :고우파니샤드 시대의 핵심문제〉로 석사학위 취득 후 도미하여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또한 송재운은 〈장횡거에 있어서의 기와 인성에 관한 일고찰〉로 석사학위 취득 후,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인하대 강사, 인천대 교수를 거친 뒤 〈왕양명 심학의 연구 : 심즉리의 연원과 치양지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본교 국민윤리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1985년에 설치된 경주캠퍼스 철학과에도 본교 철학과 대학원 출신 중 김필수, 배의용, 이한구가 교수로 부임하였다. 김필수 교수는 본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동북아의 무속사상과 한국의 토속사상〉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경주캠퍼스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이후 〈여헌역학의 도덕론적 근거에 관한 연구 :‘역학도설’을 중심으로〉로 본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도서관장, 인문대학장로 재직하였고 중국인민대학교 철학부 교류교수로 북경을 다녀왔다. 또한 한중철학회 회장, 한국주역학회 회장, 한국맹자학회 부회장, 한국동양철학연구회 감사, 국제유학연합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배의용 교수는 본교 철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83년 원광대학교에 부임하였다. 1988년 경주캠퍼스에 부임한 후 1991년 《E. Husserl의 전현상학기(前現象學期)의 기호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양고중세철학사, 인식론, 현상학 등의 강좌를 담당하였다.
 

 이한구 교수는 본교 철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현대영미철학을 전공하여 석·박사학위를 받고 1987년에 본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Fodor의 표상주의에 있어 마음과 인과성 문제〉(1994), 〈비트겐슈타인적 신앙형태주의에 대한 고찰〉, 〈도덕의 주관성과 객관성〉(1989)이 있고, 역서로 《진리와 이데올로기》(한스 바르트 저, 종로서적, 1986)와 《공정으로서의 정의》(존 롤즈 저, 서광사, 1987) 등이 있다. 본교에 부임한 후 사회윤리 제 문제, 심리의 철학적 이해, 과학철학, 논리학 등의 강좌를 담당하였다.
 

 이처럼 1950~60년대에 본교 학부·대학원에 재학하였던 신진 연구자들이 이 시기부터 학계에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로 인해 외부적으로는 본교 철학과 대학원이 신진 연구자의 산실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는 불교학으로서의 철학 연구가 아닌 인문학으로서의 철학 연구 및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많은 신진 연구자를 양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정리하자면 1970~80년대 철학과는 불교학 연구를 위한 사전 준비 내지는 보완적인 의미로서 존재하던 철학과에서 탈피하여 인문학의 본령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철학 전문 학술지인 《철학사상》, 학회지 《우리시대》를 출간하였고, 학술제인 디오니소스제를 개최하며 학과의 독자적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교과목의 개편 과정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드러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얼마 지나지 않은 90년대에 이르러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동국의 인문학을 선도하는 철학과

1990 ~ 2009

  • 1990
    • 03.08~09. 제1회 연극 공연 개최
  • 1996
    • 03. 문과대학 인문학부 철학전공으로 편제 변경
  • 1998
    • 07. 동서사상연구소 설립
  • 2000
    •   동서사상연구소 연구논총 《중국학연구》 간행
  • 2004
    • 03. 문과대학 철학과로 편제 변경
  • 2005
    • 12. 학술지 《철학사상》을 《철학·사상·문화》로 재창간
  • 2008
    • 03. 문과대학 철학·윤리·문화학부로 편제 변경

 

 1970~80년대를 거치며 철학과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학술제인 디오니소스제, 그리고 학술지 《철학사상》과 학회지 《우리시대》는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디오니소스제는 학과 소속 교수들의 학술행사이자, 대학원생 또는 학부생의 학회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초창기의 디오니소스제는 학생회의 학회 활동과 교수들의 학술행사를 적당히 가미한 행사로서 기능하였다. 또한 《철학사상》도 마찬가지로, 제6·7집이 간행된 이후 전문적인 철학 학술지로서 학과 교수들과 강사, 대학원생들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학회지 《우리시대》는 매년 학부생들의 학습 및 연구 성과를 확인하고,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동문회지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위 활동들에서 논문을 투고하거나 발표한 대학원생이나 학부생이 성장하여 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철학계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 활동들은 단순한 축제나 학술활동 이상의 의미를 넘어 신진학자의 등용문으로도 기능하였다. 이는 90년대 후반에 본교 철학과에 교수로 부임한 최인숙, 유흔우 두 교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인숙 교수는 1973년에 학회장으로서 제1회 디오니소스제를 개최하여 디오니소스제가 철학과의 전통있는 학술제로 자리매김하는데 단초를 마련하였으며, 《철학사상》 제4집(1974)을 발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민윤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1991년 독일 마인츠대학 대학원에서 《Die Paralogismen der Seelenlehre in der zweiten Anflage der ‘Kritik der reinen Vermunft’》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이후 본교에 강사로 부임하였고, 《철학사상》에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제12집, 1990), 〈칸트와 우주론〉(제16집, 1996)을 게재하였다. 1996년에 본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칸트와 독일관념론, 서양근세철학사 등의 강좌를 담당하였으며, 중앙도서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유흔우 교수는 1984년 제5회 디오니소스제에서 〈중국 본체론에 대한 고찰 :오늘날 다시 생각해보는 묵자〉라는 주제로 발표하였고, 이를 정리하여 1985년에 발간한 《우리시대》 창간호에 게재하였다. 이후 본교 철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하며 《철학사상》에 〈초순(焦循)의 ‘격물치지’에 대한 연구〉(제12집, 1990), 〈한대의 훈고학〉(제15집, 1994)을 게재하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1996년에는 《초순(焦循) 역(易) 철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창원대 강사 등을 거쳐 본교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동양철학의 근본문제, 동양근세철학, 동양현대철학 등의 강좌를 담당하였다.

 

 위 두 교수 외에도 1980~90년대에 디오니소스제, 《철학사상》, 《우리시대》에서 활약한 젊은 학도들이 한국철학계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학자로 거듭났다. 《철학사상》에 〈조선조 정치사상의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제6·7집, 1985), 〈동서양의 정의론〉(제16집, 1995)을 게재한 이서행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변증법적 유물론의 비판〉(제5집, 1983), 〈Plato의 영혼관〉(제10·11집, 1989) 등을 게재한 신종섭은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 〈역사에 있어서 원인과 이유〉(제5집, 1983), 〈한국의 철학 연구동향에 관한 분석〉(제16집, 1995)을 게재한 이운형과 〈은유의 수행적 의미에 대한 연구〉(제6·7집, 1985)를 게재한 박연규는 경기대학교 교양교직학부의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5·6에 관한 소고〉(제13집, 1992)를 게재한 박우현은 순천향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였으며, 〈공자의 천관에 관한 연구〉(제9집, 1987), 〈맹자의 천관에 관한 연구〉(제13집, 1992)를 게재한 유승종과 〈Kant의 정언명법에 관한 연구〉(제9집, 1987), 〈윤리학에 있어서 동물의 지위〉(제13집, 1992)를 게재한 김학택은 대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마르크스  윤리학에  있어서의  정의의  원리〉(제6·7집, 1985), 〈종교적 명제의 반증가능성 문제〉(제8집, 1986) 등을 게재한 고창택과 〈삼봉의 이기론의 특징과 그 영향〉(제12집, 1990), 〈삼봉 벽불론의 재조명〉(제14집, 1993) 등을 게재한 장성재는 본교 경주캠퍼스 철학과에 재직하였거나 재직 중이다. 또한 학부 3학년 때 《우리시대》 창간호(1985)에 〈비트겐슈타인의 이해를 위한 소고〉를 게재하고 대학원 진학 이후 《철학사상》에 〈Kant의 '자유'에 관한 연구〉(제10·11집, 1989), 〈조건 진술의 논리적 형식화 문제〉(제14집, 1993) 등을 게재한 윤용택은 제주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 외에도 70~80년대에 재학하였던 진영유는 중앙승가대학, 김창유는 용인대학 영화학과, 황두진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윤용남은 성신여대 국민윤리학과, 배장섭은 아시아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처럼 70~80년대 김용정 교수를 비롯한 당시 교수진 및 학부·대학원 재학생 등 철학과 일원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본교 철학과는 인문학의 본령이자 연구자의 산실로서 학계에 위상을 떨칠 수 있었으며, 이 당시 배출된 연구자들의 활약 덕분에 오늘날까지 국내 인문학계에서 본교가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위와 같은 본교 출신 신진 연구자들의 선전과 더불어 당시 교수들의 학회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동양철학회와 한국공자학회는 창설자인 정종 교수를 비롯하여 송석구 교수와 송재운 윤리문화학과 교수가 회장을 역임하며 전국적인 학회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또한 국내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한국철학회는 김용정 교수가 재임중에 회장을 맡아 교내에 학술회의를 유치하였으며, 또 한국도가학회와 노장철학연구회는 김항배 교수가 학회 창설에서부터 학술지 간행과 학술회의 개최 등 회무를 관장하며 기틀을 다져 오늘날 한국도가도교학회 이르게 하였다.

 

 철학과는 1990년대에 들어서 크게 두 가지의 변화를 겪었다. 먼저, 철학과의 교수진에 변동이 적지 않았다. 황경식 교수가 모교인 서울대학교로 옮기고, 황필호 교수가 사임하였다. 그 뒤를 이어 양문흠, 정성호 두 교수가 부임하였다. 또한 김용정 교수의 뒤를 이어 최인숙 교수가 부임하였으며, 2000년대에 퇴임하는 송석구, 김항배 교수의 뒤를 잇기 위해 유흔우, 홍윤기 교수가 부임하였다.

 

 양문흠 교수는 서양철학 전공으로 서강대 철학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1984년 《‘일(⼀)’과 ‘타자(他者)’를 중심으로 한 파르메니데스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본교 교수로 부임하여 형이상학과 서양고대철학사, 서양중세철학사 강좌를 담당하였다.

 

 정성호 교수는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나와 1988년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Objective Reference; A Study of it's Background, Nature and Recent Controverses》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본교에 부임하여 인식론과 언어분석철학 강좌를 담당하였으며 문과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홍윤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95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Dialektik - kritik und Dialektik - Entwurf》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9년에 본교에 부임하여 사회철학 및 문화와 역사철학 등의 강좌를 담당하였다.

 

 90년대 후반에는 본교 교수진의 변화뿐만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연구와 외연 확장을 위한 변화 또한 있었다. 학과의 교수와 대학원 중심 연구의 한계를 넘어, 학제간 연구 및 국내외 관련기관 및 연구단체들과 보다 전문적인 학술제휴를 위하여 본교에 동서사상연구소를 설치한 것이다. 동서사상연구소는 1998년 7월 철학을 중심으로 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하여 현대세계의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할 목적으로 문을 열었다. 동서사상연구소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사업으로 인문사회, 자연공학, 문화예술 분야와의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기로 하였다. 동시에 자료의 수집과 간행, 연구발표회, 학술강연회, 논문집 간행, 국내외 관련 연구단체 및 학술기관과 제휴한 학술 활동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첫걸음으로 동서사상연구소는 2001년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근대 중국인의 한국학총서인 왕선겸의 《조선휘고(朝鮮彙考)》의 조사연구’와 ‘《청실록》에서의 한국학자료 발굴·수집 및 연구 겸 디지털화 기초자료작성’을 조건으로 6,200만 원과 1억 8,500만 원 등 총 2억 4,700만원을 지원받아 연구를 수행하였다. 또 연구논총으로 《중국학연구》 제1·2집을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간행하였다.

 

 또한 외연 확장을 위한 국제적인 학술교류 역시 활발히 추진하였다. 당시 본교 총장 겸 국제중국철학회의 회장으로 재임하였던 송석구 교수의 노력으로 1999년에는 중국 전국고등원교고적정리연구 공작위원회와 제1차로 《한국한학가인명사전》의 공동 편찬을 위한 협정을 맺었고, 제2차로 학자교류 및 공동학술회의 개최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본 연구소 주최의 국제학술회의도 2차에 걸쳐 개최되었다. 2000년 10월에 열린 제1회 재한중국교수연의회의 학술회의에서는 ‘중국적 한국학과 한국에서의 중국어 교학’을 주제로 3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어 2001년 12월에 열린 제2회 재한중국교수연의회의 학술회의에서는 ‘중국철학과 중국어교육’을 주제로 총 9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2001년에는 중국의 상하이 푸단대학 한국학연구소, 상하이사범대학 고적정리연구소와 학술교류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어 2002년에는 중국 국가도서관 소장의 도서 이용권 획득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중국 둥베이 사범대학 명청연구소와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또 중국 닝보에 있는 중국 최고(最古) 도서관인 천일각과도 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전문 연구기관인 동서사상연구소의 출범과 연구소 중심의 학술활동으로 인해 기존에 학과에서 발간한 학술지인 《철학사상》 또한 변화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철학사상》은 1970년 창간호부터 2003년 제24집에 이르기까지 본교 연구자의 연구 성과 발표의 장이자 신진학자의 등용문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학과 주도의 학술지라는 한계로 인해 본교 출신 연구자들의 연구에만 의존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학제간 연구를 위한 학술지로 거듭나기에는 외연적 한계가 분명하였다. 또한 당시 국가적으로 추진되었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을 토대로 한 학술지 체계에서 학과 주도 발간으로 인한 외연적 한계는 치명적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2004년, 33년간 유지되어 온 《철학사상》을 폐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당시 동서사상연구소 소장인 최인숙 교수와 초대 편집위원장인 유흔우 교수의 노력으로 《철학사상》의 전통을 잇는 학술지인 《철학·사상·문화》를 2005년에 발간한다.

 

 2005년 12월 《철학·사상·문화》의 기념비적인 창간호 이래로 2009년 1월에 KCI 등재후보학술지에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최인숙, 유흔우 교수를 비롯하여 양문흠, 정성호, 홍윤기 교수와 당시 은퇴하여 명예교수로 재직중이었던 김용정 교수, 70~80년대를 거치며 90년대에 학계에 진출하여 당시 한국철학계의 주요 연구자로서 활약하고 있던 본교 출신의 고창택, 김학택, 박연규, 배의용, 유승종, 윤용택, 이운형, 이한구, 장성재, 전석환 교수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신진 연구자로 학계에 진출한 이유진, 김정일, 신양섭, 김인순(김도연), 김영진, 유병래, 조극훈 박사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박민미, 신승철, 남정우, 김현수, 한병준, 허유선 등의 노력 또한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즉, 1953년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철학과가 쌓아올린 모든 학술적 노력과 성과가 《철학·사상·문화》를 형성하는 데 밑바탕이 된 것이다.

 

 이러한 철학과의 학술적 발전과는 별개로, 학과에는 위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1995년, 정부의 교육개혁방안의 발표에 발맞춰 본교는 1996년부터 학과제에서 학부제로 개편한 바 있다. 이에 철학과는 사학과, 국민윤리학과와 함께 90명 정원의 문과대학 인문학부에 편제되었다. 그러나 학부제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인기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학점 경쟁 등의 폐해를 낳게 되었고, 결국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인문학부 또한 해체되었고 철학과 또한 다시 30명 정원의 문과대학 철학과로서 편제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대학에서는 학과 구조조정 열풍이 불어닥쳤다. 이는 본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7년 새로이 취임한 오영교 총장은 취임 전부터 이미 학과 구조조정을 예고하였으며, 2008년에는 부분적으로 이미 문제가 드러난 학부제를 시행하며 철학과, 윤리문화학과(舊 국민윤리학과), 독어독문학과를 철학·윤리·문화학부에 편제시키며 입학정원을 총원 90명에서 61명으로 대폭 축소시켰다. 이에 철학과를 비롯한 세 학과 모두 지난 인문학부시기에 이미 문제가 드러난 학부제 시행에 반대하였고, 항의의 차원으로 본관을 점거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제는 시행되었고, 2010년대에 철학과에 찾아오는 위기와 변화는 여기에서부터 기인한다.

인문학 위기의 대응과 중흥으로의 전진

2010 ~ 현재

  • 2013
    • 03. 문과대학 철학과로 편제 변경
    • 05. 제1회 동국철학특강 개최
    • 11. 철학과 60주년 기념 동문회
  • 2016
    • 01. 학술지 《철학·사상·문화》 KCI 등재지 선정
  • 2022
    • 11.25. 철학과 70주년 기념 동문회

 

 2008년, 입학정원 61명으로 축소 편성된 철학·윤리·문화학부는 매년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2009년에는 54명으로 축소되었으며, 2010년에는 독어문화학과의 폐지로 2009년의 2/3인 36명으로 축소되었다. 2011년에는 32명으로 축소되었으며, 2012학년도에는 윤리문화학과의 폐지가 결정되었다. 철학·윤리·문화학부의 입학정원이 매년 축소되고, 3년간 독어문화학과, 윤리문화학과가 차례로 폐지되는 것을 지켜본 철학과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학과 존속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으며, 윤리문화학과와 연대하여 학과 폐지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 2011년에 경주캠퍼스는 철학·논술 전공으로 존재하던 철학과가 폐지되었다.


 철학과 60주년을 맞은 2013년, 다른 두 학과의 폐지로 인해 학부제의 의미가 없어진 철학과는 다시 학과제로 개편되었지만, 이미 입학정원은 2004년의 30명에서 절반가량 깎인 17명이 된 상태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은 철학과는 변화를 모색하였다. 위 두 학과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작용한 논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어 온 취업, 창업 등에서 인문학이 경쟁력이 없다는 현실적 무용론이었다. 이러한 인문학 무용론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과와 연구소는 철학의 대중화와 인문학의 교내 확산을 위해 2013년 동국철학특강을 기획하였다.

 

 동국철학특강은 그동안 본교의 철학도들이 전공자 외의 사람들에게도 철학의 문을 열어 철학의 대중화 및 일반화를 지향하며 기획한 상설 강연이다. 첫 특강은 5월 29일에 중앙도서관에서 열렸는데, 본교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김용정 명예교수가 〈철학에서 본 빅뱅과 상보성(相補性)〉을 주제로 강연하였다. 이는 지난 기간동안 외부에서 제기된 철학에 대한 무용론을 불식시키고, 당시 태동하기 시작한 과학·기술주의에 대응하여 이공계열과의 학제간 연구 가능성을 보여준 강연이었다. 이 강연 이후 매년 동국철학특강을 개최하고 있으며, 김용정 교수와 같은 철학계의 원로 뿐만 아닌 신진 연구자와 타 분야에서 인문학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 또한 초청되어 강연하였다.

 

 동국철학특강과 더불어 2015년, 동서사상연구소에서는 춘계 정기 학술대회를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 기획하기’라는 주제로 개최하였다. 이 주제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의식으로 인해 선정되었는데, 첫째는 지난 수십 년 간에 비해 볼 때 청년들의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 보인다는 점이며, 둘째는 앞으로의 사회는 지난 수십 년과는 현격히 다른 사회 구조일 수밖에 없고, 또 다른 구조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의도에 맞춰 최인숙 교수는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와 대학의 공공성〉에 대해 발표하였고, 본교 동문인 윤용택 제주대 교수는 〈청년들이 살아갈 생태환경 기획하기〉를, 경기대 조극훈 교수는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와 소장 학자들의 삶 기획하기〉를 발표하였다. 또한 본교 경영학부의 이동걸 교수는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와 경제 구조 기획하기〉를 발표하였다. 이 기획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본교 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연구소는 이후 추계 정기학술대회부터 매년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 기획하기’를 대주제로 하여 학술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학과의 위기는 계속되었다. 2008년을 끝으로 양문흠 교수가 퇴임했으며, 뒤이어 2014년에는 정성호 교수, 2015년에는 최인숙 교수가 연달아 퇴임하였다. 그러나 입학정원의 축소로 인해 학교 당국은 학부 정원 대비 교수 인원을 이유로 신규 교수 초빙에 미온적이었으며, 2010년대 이후 교수 초빙 방식이 연구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철학과의 교수 충원은 난항을 겪게 된다. 따라서 2016년부터 철학과에는 유흔우, 홍윤기 교수 두 명만 남게 되었다. 이는 1960년대 후반, 교수 충원이 늦어져 김병규, 정종, 한상련 세 교수만이 재직하던 시절 이후로 처음 맞게 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중에 낭보 또한 있었다. 전 학과적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던 《철학·사상·문화》가 2016년에 KCI 등재학술지로 선정된 것이다. 1998년 동서사상연구소 개설 이후, 꾸준히 국제중국철학회, 한국칸트학회, 한국도가도교학회, 한국여성철학회, 한국공자학회, 율곡학회 등과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철학계 내에서 동국 철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한국연구원, 아시아문화학회, 길림대학 한국학연구소 등과 교류하며 학제간 연구를 추진해온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로서 《철학·사상·문화》는 철학계뿐만 아닌 인문학계 전체에서 우수한 학술지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인문학계를 비롯한 각 학계에서 철학과의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또한 본교 출신 연구자들의 활약 또한 계속 이어졌다. 2012년에는 조극훈이 경기대 교양학부 교수, 2013년에는 김영주가 대진대 철학과 교수, 2016년에는 이석주가 본교 다르마칼리지 교수로, 2022년에는 이진희가 아주대 다산학부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 외에도 유병래는 한국도가도교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김현수는 경희대 인문학연구원의 HK연구교수로서 재직하고 있다.
이러한 토대를 기반으로 철학과는 2017년부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였다. IT와 AI 기술의 발달로 2016년부터 국내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학계의 조명이 시작되었고, 이에 동서사상연구소도 ‘청년들이 살아갈 사회 기획하기’의 일환으로 ‘인공지능, 새로운 기술과 인간 사회’라는 주제로 두 차례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동안 연구소가 철학계의 다양한 학회들과 교류하고, 여러 분야와의 학제간 연구를 했던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이 두 학술대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서 철학의 역할에 대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두 학술대회를 계기로 철학과는 다가오는 미래사회에서 철학의 역할에 대해 심사숙고한 결과, 2018년부터 IT와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적용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교과목들을 신설하였다. 2018년에는 과학·AI·시민, 기술·미디어철학, 주역과 과학기술철학을 신설하여 운영하였으며, 학부생 및 강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21년에 인공지능시대의 과학·철학·종교, 철학과 기술, 미디어와 예술철학, 포스트 휴머니즘과 인간의 삶, 인지과학의 철학 등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본교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 과학기술역량 강화를 중점과제로 선정하기 이전에 일어났는데, 철학과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교류하며 학계 및 교육계의 흐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철학과는 김영진, 심지원 두 교수를 맞이할 수 있었다. 김영진 교수는 본교 철학과 출신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 후, 도미하여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하였다. 《Prolegomena to a New Theory of Intent》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Representation and the Bedrock of Mind〉(2015), 〈Grasping Three Senses of the Notion “the Otherness of God” as the Grounds for Interreligious Toleration〉(2017), 〈현대 인지과학과 고전적 현상학 -그 간극 메우기에 관한 고찰-〉(2018) 등이 있다. 2018년에 본교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현재 현상학과 심리철학, 인공지능 시대의 과학·철학·종교 등을 강의하고 있다.

 

 심지원 교수는 본교 윤리문화학과 출신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뮌스터대학 철학과에서 《Enhancement: Die Legitimitaet von Eingriffen am gesunden menschlichen Koerper》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논문으로 〈의족을 훔치는 행위는 상해죄인가 절도죄인가〉(2015) 〈공학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래의 의료윤리〉(2019)가 있으며, 2021년에 본교 교수로 부임하여 현재 철학과 기술, 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처럼 철학과에 신임 교수가 부임한 반면, 홍윤기 교수가 2021년 정년 퇴임하였으며 유흔우 교수도 2023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에 2022년 철학과 학생회는 교수진 유지에 위기감을 느끼고 교수진 충원을 학교 당국에 공식 요청하였다. 이 과정에서 철학과가 인문학계에서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과, 동국대가 명문 사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철학과가 필요하다는 본교 학생들의 의견이 주를 이루어 철학과 학생회의 교수 충원 요청에 적극 호응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철학과의 발전은 계속되었다. 2021년 7월, 동서사상연구소는 중구청과 협약을 맺고 한국연구재단의 인문도시사업을 1년간 진행하여 중구의 인문학적 토대를 구축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2022년 11월, 《철학·사상·문화》가 KCI 등재학술지 인증 재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재인증에 성공하였다.

 

 철학과는 60년대 후반, 그리고 90년대 후반 두 번 교수진이 크게 변화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모두 철학과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본교 인문학의 본령으로서 자리매김하고 학계에서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현재 교수진의 변화는 앞으로 철학과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무궁한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될 것이다. 철학과가 이번 70주년을 넘어 앞으로 100주년에 이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동문들의 무한한 관심을 부탁드리는 바이다.